4세 아이가 영어유치원 입학 시험을 준비한다는 이야기,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현실입니다. 교육부가 드디어 36개월 미만 영아 대상 인지 교습을 전면 금지하는 학원법 개정에 나섰습니다. 저도 영어 때문에 오랜 시간을 허비했던 사람으로서, 이 정책이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합니다.
조기사교육, 지금 얼마나 심각한가
전국의 유아 대상 영어학원 수가 2019년 615개에서 2025년 814개로 6년 사이 32% 늘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시장이 커지는 속도가 일반 학원 시장보다 훨씬 빠르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4세 대비반'까지 생겨났습니다. 4살짜리 아이를 학원 입시에 대비시키는 겁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도 지난해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짚었습니다. 인권위는 '7세 고시'로 불리는 극단적 조기 사교육이 아동의 놀이권과 휴식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시험 기반 유아 학원을 규제하라고 권고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아이의 권리라는 개념 자체가 이 시장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치동에서는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준비반이 연령을 낮추며 확장 중입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4세라는 나이는 모래놀이를 하고 낮잠을 자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 아이들이 알파벳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현실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어른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지교습 규제, 무엇이 달라지나
인지 교습(cognitive instruction)이란 언어·수리 등 교과목 지식을 강사 주도로 주입하는 방식의 수업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칠판에 'A is for Apple'이라고 쓰고 아이들이 10번씩 따라 읽게 하거나, 알파벳 워크북을 매일 채우게 하는 수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번 학원법 개정안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36개월 미만 영아 대상 인지 교습 전면 금지
- 36개월 이상 취학 전 유아 대상 인지 교습은 하루 3시간, 주 15시간 이내로 제한
- 학원 내 비교·서열화(점수·등수 통보) 행위 금지
- 한국어 사용 시 벌점을 주는 행위 금지
- 입학을 위한 지필·구술 평가 및 외부 시험 성적 요구 금지
- 위반 시 매출액의 최대 50% 과징금, 과태료 상한 1,000만 원으로 상향
비교·서열화(ranking)란 아이의 학습 결과를 점수나 등수로 환산해 타인과 비교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유아 단계에서 서열화가 이루어지면 학습 동기보다 불안이 먼저 자리 잡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이 부분은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영어 시험 점수로 줄 세워지는 경험을 반복했는데, 그게 영어를 좋아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규제가 실제로 작동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법 개정에는 국회 논의가 필요하고, 시행까지 1~2년이 걸릴 전망입니다. 그 사이 영어유치원들이 음악·미술·체험 활동과 영어를 결합한 형태로 인지 교습을 우회할 가능성도 충분히 제기됩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배운 것, 놀이학습의 진짜 의미
저는 중학교부터 20대 중반까지 10년 넘게 영어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시간 동안 영어가 제 안에 쌓인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공부는 하고 있는데, 제 안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이상한 상태가 계속됐습니다.
그러다 20대 중반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한테는 10년 넘는 학원 생활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남겨준 시간이었습니다. 현지에서 보게 된 건 아이들이 언어를 '공부'로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놀이 속에서, 실수를 반복하면서 언어를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언어 습득(language acquisition)이란 규칙을 외워서 언어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Stephen Krashen)의 입력 가설(Input Hypothesis)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강조된 개념입니다. 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울 때 문법 교재를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 경험이 제가 아이 영어 교육을 바라보는 기준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파닉스(phonics, 소리와 문자 사이의 관계를 가르치는 방법)를 배울 때도 워크북을 강제로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영상과 책을 통해 소리에 먼저 노출되고 즐겁게 반복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 아이는 그 방식으로 영어와 처음 만났으면 했습니다.
규제보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
규제는 시작점일 뿐입니다. 경인여대 손혜숙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측두엽(temporal lobe)이 발달하는 7세 이후에 영어 학습을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습니다. 측두엽은 언어 처리와 직접 관련된 뇌 영역으로, 이 부위의 발달이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에 외국어를 주입하면 오히려 모국어 문해력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더 자주 오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를 힘들게 하고 싶어서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입니다. 그 불안을 이용하는 시장이 계속 커져온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해력(literacy)이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 글을 이해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모국어 문해력이 충분히 자리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어를 주입하면, 두 언어 모두에서 중간 어딘가에 머무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 경험에서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영어도 어렵고 국어도 흔들렸던 시절이요.
저도 아이에게 돌 이후부터 영어 노출을 시켜왔고 모국어로 한국어를 사용했지만 하루의 많은 시간을 영어노래나 영어로 대화하기를 시도했습니다. 지금은 영어의 자신감도 있으며 영어 책읽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지만 한국어인 모국어가 어눌하고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자주 느끼는 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어 문법이나 한국어로 된 책을 의식적으로 읽어주고 국어 문법도 채워가는 중입니다. 두 언어를 동시에 익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규제가 효과를 내려면 법 조항보다 부모의 인식이 먼저 달라져야 합니다. 한국학원총연합회가 학원법 개정에 학부모 교육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정작 아이의 선택권은 이 논의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4살 아이는 "학원 가고 싶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육부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낼지는 시행 이후를 지켜봐야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규제가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했습니다. 영유아 조기 사교육이 아이 발달에 유익하다는 전제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영어 실력은 나중에 얼마든지 쌓을 수 있지만, 4살의 하루는 단 한 번뿐입니다. 그 사실을 먼저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이 교육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부모님들을 응원합니다.
참고: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252217.html